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콩가루 집안 (문단 편집) ==== [[사담 후세인|후세인]] 일가 ==== * [[사담 후세인]]([[1937년]] [[4월 28일]] ~ [[2006년]] [[12월 30일]]) [[이라크]] 전직 [[대통령]](재임: [[1979년]] ~ [[2003년]]). 어렸을 때 양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산 기억 때문에 아들에게 손찌검도 제대로 못하고 거의 방목 수준으로 놓아 기를 정도로 아들을 너무 사랑하며(물론 옳은 선택은 아니었다) 딸들 결혼도 손수 챙겨주는 등 자상한 남자. 그러나 한편으론 이미 [[유부녀]]에게 청혼하여 둘째 부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자기 뒷통수를 쳤다고 딸네미들의 [[사위]]들을 총살해버리고 뇌내망상으로 [[쿠웨이트]]를 점령했다가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[[걸프전]] 당시 뒷통수를 쳤다고 [[쿠르드족]] 씨를 말려버린 희대의 [[독재자]]였다. 결국 2003년, [[미국]]의 이라크 침공으로 권좌에서 축출당했고 [[2006년]] 연말, 약 10여개의 인륜범죄 유죄 판결을 받고는 교수형에 처해졌다. * 사지다 탈파 사담 후세인의 첫번째 아내. 1963년 사담 후세인과 맞선으로 결혼했다. 힘 있는 바트당 수뇌부 가문 출신이라 사담이 권좌에 오르는데 큰 힘이 되었다. 이 [[아줌마]]도 남편 뺨치는 만만찮은 [[인간 말종]]이어서 우다이가 카멜 한나를 증오하다 못해 살해하게 된 것도 사지다가 옆에서 계속 원수를 갚아달라고 충동질한 탓. 그 외에 자기 정적들을 고문하라고 지시하는 등 이쪽도 심히 무시무시한 아줌마. 2003년 이후 행적을 감추었다. 현재 이라크 반군을 금전적으로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. [[탈세|미국이 침공할 당시 이라크 중앙은행 금고를 싹싹 긁어갔다고 한다.]] * [[우다이 후세인]]([[1964년]] [[6월 18일]] ~ [[2003년]] [[7월 22일]]) 사담 후세인의 장남. 사실상 '''현대판 [[순화군]]'''이라고 할 만한데,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다가 천장에 총질하는 건 기본. 아버지의 둘째 아내를 소개시켜줬다며 파티장(그것도 [[이집트]] 대통령 영부인까지 참석한 파티서)에서 자기 아버지 최측근 카멜 한나를 '''지팡이로 죽어가기 직전까지 구타한 다음 죽어가는 카멜 한나를 전기톱에 가까운 전동식 음식 자르는 칼로 숨통을 끊어버렸으며''' 이라크 [[올림픽]] 위원장 시절에는 경기에서 진 선수들을 고문하는 게 '''취미'''였다고 한다.[* [[축구선수]]들에게 맨발로 몇 시간씩 콘크리트 [[축구공]]을 차라고 했다고 한다.] 거기다가 자기 집 지하에 감옥을 만들곤 정치범들을 수시로 고문하였으며, 반송장이 된 수감자를 바로 옆의 개인 동물원 [[표범]]들에게 던져주며 즐거워했다고 한다. 어찌나 추악한 악행들을 해댔는지 참다 못한 [[아버지]] 사담조차도 카멜 한나 사건 때는 개인 감옥에 4년 처박은 후[* 그나마도 죽이겠다고 펄펄 뛰는 걸 아내 사지다와 요르단 국왕이 뜯어말려서 겨우 참았다고 한다.] [[스위스]] 대사관 직원으로 쫓아냈지만, 얼마 후 우다이는 어느 [[레스토랑]] 직원을 찔러 죽이겠다고 위협한 죄로 재송환당했고, 결국은 1996년 총알을 한 다발 얻어맞고는 절름발이 신세가 되었다.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동생 쿠사이와 함께 도피생활 도중 발각, 치열한 교전 중 [[미국군]]이 발사한 미사일에 맞아 사망. 참고로 최후는 비참했는데, 죽은 후 [[미국군]]은 죽은 우다이와 동생 쿠사이 후세인의 시체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전세계 기자들에게 배포했다. * [[쿠사이 후세인]]([[1966년]] [[5월 17일]] ~ [[2003년]] [[7월 22일]]) 사담 후세인의 차남. 그나마 이 콩가루 집안에선 상대적으로 제정신인 사람. 여자를 매일 갈아치운데다 부인과도 [[이혼]]한 우다이와는 달리 결혼 생활도 나름 평온했고, 아들도 셋이나 낳았다. 그러나 잔학성 자체는 부모는 물론 지 형과 마찬가지로 만만치 않아서 1991년 걸프전 직후 벌어진 [[시아파]] 반란 분쇄와 남부 습지대 파괴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. 언젠가는 감옥이 꽉 들어찼다고 수천 명에 달하는 정치범들을 '''빈 공간 만들려고''' 쓸어버리는 짓을 감행한 적도 있다. 역시 2003년 우다이와 함께 도피 중 폭사. 당시 14살(!)이었던 장남 무스타파도 아버지와 같이 미국군 장병들을 향해 AK를 난사하다가 그때 같이 죽었다. * 후세인 카멜&사담 카멜 형제 사담 후세인의 사위들이자 먼 친척. 각자 사담의 삼녀 라그하드 후세인, 그리고 사녀 라나 후세인과 1986년 결혼했다. 우다이를 바보라며 멸시하고 우다이도 벼락출세한 이 둘(특히 이라크 무기 개발 책임자가 된 후세인)을 "골든 보이"라고 부르며 이죽대긴 했어도 사이가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지만, 88년 발생한 카멜 한나 사건 당시 후세인이 카멜 한나 사건과 그 이전에 우다이가 벌인 기행을 죄다 일러바치면서 사이가 급격히 틀어졌다. 그 후에는 우다이가 사사건건 후세인에게 총을 들이대는 등 목숨이 위험해지자 1996년 전격적으로 아내들을 데리고 [[요르단]]으로 망명했다. 물론 좋은 의도는 아니었고, 실상은 [[미국]]에게 이라크 무기개발 정보를 넘겨주고 CIA의 도움을 받아 장인 사담 대신 권좌를 차지하려는 속셈이었다. 그러나 그 후 사태가 꼬이면서(정확히 말하자면 사담이 무기개발 혐의를 죄다 카멜 형제에게 전가하면서 제대로 역관광을 태워버렸다) 오갈 데가 없어지자 '''목숨만은 살려주겠다'''는 사담의 꼬임에 넘어가 다시 이라크로 돌아왔다. 그 직후 '''강제로 이혼''' 당했으며, 얼마 후 같은 집안 사람들이 "'''배신자를 처단하러 왔다'''"며 총을 난사하며 그들의 집에 쳐들어와 둘을 사살했다. '''사담 본인'''은 지켜주겠다고 약속을 한 터라 죽일 수 없으니 '''같은 집안 사람이 너희 명예에 똥칠을 했으니 너희가 처리해라'''며 둘의 가문인 알 - 마지드 가문을 협박한 것. * 영국 [[BBC]]와 [[HBO]] 합작의 4부작 [[하우스 오브 사담]]에서 이상의 내용들(의 일부)의 재연극을 볼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